이민자의 삶을 뒤흔든 은밀한 거래
실리콘밸리 이민국 직원 뇌물 사건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에도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에서 영주권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직장을 잡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기 위한 사실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박함을 이용한 거대한 영주권 비리가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중심에는 한인 브로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이민업무를 담당하던 이민국(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의 산호세 사무소 감독관 릴랜드 다윈 서스테어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서스테어가 한인 이민 컨설턴트들과 결합해 12년에 걸쳐 275명의 한인 이민자에게 부정하게 영주권을 발급했으며, 서스테어가 한인 브로커들로부터 최소 50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민국 직원과 한인 브로커의 만남
사건은 1986년경 시작됐습니다.
서스테어는 오랫동안 연방정부에서 근무했고 산호세 이민국에서 영주권 심사업무를 감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보도와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정상적인 심사절차를 우회하거나 다른 심사관의 도장을 사용하고 서명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영주권을 승인했습니다. 그와 연결된 핵심 한인 브로커는 존 최와 다니엘 리였습니다.
다니엘 리는 산호세에서 KOAM Immigration Service를 운영했습니다. 1993년경 리는 서스테어에게 접근해 한 고객과 세 자녀의 영주권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4만 달러를 지급하는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이후 서스테어가 Lee를 통해 받은 돈은 약 2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당시 자료는 전합니다.
존 최와의 관계는 더 오래됐습니다. 서스테어는 최가 고객에게 받은 돈의 절반가량을 자신의 몫으로 받는 방식으로 거래했고, 최로부터 받은 금액만 30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보도됐습니다. 당시 이들로부터 영주권 한장을 구입할려면 3만달러를 지불했다고 당시 LA 타임즈는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275명이 돈을 주고 영주권을 샀다”고 표현해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부 고객은 자신들이 지불한 돈 가운데 일부가 이민국직원에게 뇌물로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니엘 리 역시 출소 후 자신의 고객 약 50명은 뇌물 사실을 몰랐으며 정상적인 이민수속 또는 신속처리 비용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민당국은 정상적인 영주권 신청비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큰 금액이었고, 일부 신청자는 실제 경력과 맞지 않는 전문직 자격으로 영주권을 받았다는 점 등을 들어 신청자들이 전혀 몰랐다고 일률적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공모자인가, 피해자인가
이 문제는 이후 수년간 계속된 275명 사태의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1998년, 내부자가 스스로 문을 열었습니다. 12년 가까이 계속되던 사건은 뜻밖의 방법으로 무너졌습니다. 1998년 2월 9일, 서스테어가 산브로노에 위치헌 미 법무부 사무실을 스스로 찾아갔어요. 그는 자신이 이민 브로커들로부터 돈을 받고 수백 건의 영주권을 부정하게 승인했다고 털어놓았죠.
그리고 다음 날에는 수사당국에 협조해 몸에 녹음장치를 착용하고 다니엘 리를 만났습니다.
장소는 거창한 호텔이나 사무실이 아니었습니다. 버거킹 주차장이었죠.
이 만남과 서스테어의 증언은 결국 다니엘 리와 존 최를 기소하는 중요한 증거가 됐습니다. 두 사람은 1999년 사기와 뇌물 관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각각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핵심에 있던 서스테어는 정부 수사에 협조했다는 대가로 검찰은 실형을 피하도록 요청했고, 그는 교도소 수감 대신 출퇴근 등 제한적인 외부활동이 허용되는 사회복귀형 교정시설인 halfway house 6개월 자택에 머무는 home confinement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275명의 명단
사건은 여기서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브로커가 처벌받고 부패한 이민국 직원이 처벌받으면 끝날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여기서부터 두 번째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서스테어가 수사기관에 자신이 부정하게 영주권을 승인했다고 밝힌 사람들의 명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숫자가 바로 275명.
이들은 이름 없는 불법체류자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과학자, 의사, 목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업가등이 포함돼 있었고, 상당수는 이미 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베이 에리어에 있었지만 100명 이상은 남가주 지역에 거주했습니다.
어느 날 이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주권이 부정한 방법으로 발급된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스테어는 수사망이 좁혀오던 1994년경 관련 영주권 신청파일 상당수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후 영주권 취득자들이 자신들의 신청이 정상적이었다고 주장하려 해도 이를 입증할 원본서류가 사라진 경우가 생겼습니다.
우리 이름도 그 명단에 있습니까
당시 Los Angeles Times가 소개한 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는 이 사건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1993년 한 부부는 영주권 서비스를 알리는 신문광고를 보고 다니엘 리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3만 달러를 마련했고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몇 년 뒤 한인신문에서 INS 직원과 한인 이민 브로커가 연루된 영주권 사기사건기사를 읽었습니다. 불안해진 이들 부부는 기사에 등장한 산호세 변호사에게 연락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도 정부가 확보한 명단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전화가 울릴 때마다 추방통지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가족은 증언했습니다.
영주권 사건이 추방사건으로
정부는 275명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당시 95명을 대리하고 있었던 변호사는 이 가운데, 14명에게 이미 추방심리를 위한 출석통지가 발부됐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이미 한 명은 추방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는 늘었습니다. 2005년 LA 타임즈는 275명 가운데 약 24명이 실제 추방됐거나 자진 출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는 사건 당시 어린아이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1991년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당시 13세였던 한인도 훗날 추방 대상이 됐습니다. 그는 성장해 27세의 회계사가 됐지만 자신의 영주권 문제 때문에 직장과 결혼 등 인생 전체가 불확실해졌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은 한인사회에서 단순한 이민사기를 넘어선 문제가 됐습니다.
부패한 정부 직원과 브로커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가족과 아이들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연방의회에서도 관심
연방의원과 캘리포니아 주의회까지 움직였습니다
2003년에는 정치권도 개입했습니다. 베이 에리어 연방하원의원이었던 마이크 혼다와 죠 로프그렌은 당시 법무장관 J존 에시코크에게 서한을 보내 사건을 재검토하고, 영주권 취득자들이 불법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정부가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켈리포니아 주의회도 사태가 커지자 ‘한인 이민자에 관한 공동결의안(AJR 6)’을 채택해 연방정부에 이들 한인 영주권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275명 사연
브로커들은 감옥에 갔고 부패한 이민국 직원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으로 추방됐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미국을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이민법원을 오갔습니다. . 하지만 법원은 이들 모두를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2010년 제9연방항소법원은 서스테어 사건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영주권을 받은 한인 남매의 사건에서 이들을 기록상 범죄의 ‘무고한 주변인(innocent bystanders)’으로 설명하고, 이민법상 구제를 신청할 기회를 인정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275라는 하나의 숫자 뒤에는 275개의 서로 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불법적인 방법임을 알고 돈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처리한 영주권을 아무것도 모른 채 받은 어린 자녀도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이민수속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몇 년의 형을 살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어떤 이민자들에게 그 영주권 한 장의 후유증은 1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275명 전원의 최종 결과, 몇 명이 결국 영주권을 유지했고, 몇 명이 추방됐으며, 몇 명이 시민권까지 취득했는지를 집계한 공식 최종 통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영주권 사건이 추방사건으로
정부는 275명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당시 95명을 대리하고 있었던 변호사는 이 가운데, 14명에게 이미 추방심리를 위한 출석통지가 발부됐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이미 한 명은 추방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는 늘었습니다. 2005년 LA 타임즈는 275명 가운데 약 24명이 실제 추방됐거나 자진 출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는 사건 당시 어린아이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1991년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당시 13세였던 한인도 훗날 추방 대상이 됐습니다. 그는 성장해 27세의 회계사가 됐지만 자신의 영주권 문제 때문에 직장과 결혼 등 인생 전체가 불확실해졌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은 한인사회에서 단순한 이민사기를 넘어선 문제가 됐습니다.
부패한 정부 직원과 브로커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가족과 아이들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연방의회에서도 관심
연방의원과 캘리포니아 주의회까지 움직였습니다
2003년에는 정치권도 개입했습니다. 베이 에리어 연방하원의원이었던 마이크 혼다와 죠 로프그렌은 당시 법무장관 J존 에시코크에게 서한을 보내 사건을 재검토하고, 영주권 취득자들이 불법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정부가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켈리포니아 주의회도 사태가 커지자 ‘한인 이민자에 관한 공동결의안(AJR 6)’을 채택해 연방정부에 이들 한인 영주권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275명 사연
브로커들은 감옥에 갔고 부패한 이민국 직원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으로 추방됐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미국을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이민법원을 오갔습니다. . 하지만 법원은 이들 모두를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2010년 제9연방항소법원은 서스테어 사건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영주권을 받은 한인 남매의 사건에서 이들을 기록상 범죄의 ‘무고한 주변인(innocent bystanders)’으로 설명하고, 이민법상 구제를 신청할 기회를 인정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275라는 하나의 숫자 뒤에는 275개의 서로 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불법적인 방법임을 알고 돈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처리한 영주권을 아무것도 모른 채 받은 어린 자녀도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이민수속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몇 년의 형을 살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어떤 이민자들에게 그 영주권 한 장의 후유증은 1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275명 전원의 최종 결과, 몇 명이 결국 영주권을 유지했고, 몇 명이 추방됐으며, 몇 명이 시민권까지 취득했는지를 집계한 공식 최종 통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275명 사연
브로커들은 감옥에 갔고 부패한 이민국 직원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으로 추방됐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미국을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이민법원을 오갔습니다. . 하지만 법원은 이들 모두를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2010년 제9연방항소법원은 서스테어 사건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영주권을 받은 한인 남매의 사건에서 이들을 기록상 범죄의 ‘무고한 주변인(innocent bystanders)’으로 설명하고, 이민법상 구제를 신청할 기회를 인정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275라는 하나의 숫자 뒤에는 275개의 서로 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불법적인 방법임을 알고 돈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처리한 영주권을 아무것도 모른 채 받은 어린 자녀도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이민수속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몇 년의 형을 살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어떤 이민자들에게 그 영주권 한 장의 후유증은 1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275명 전원의 최종 결과, 몇 명이 결국 영주권을 유지했고, 몇 명이 추방됐으며, 몇 명이 시민권까지 취득했는지를 집계한 공식 최종 통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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