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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야사 6화: 2~3%의 유혹

 SNC 외환 투자 사기 


사건의 취재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지난 2008년 10월 말경, 평소 친분이 있던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SNC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SNC가 한 변호사를 찾아가 파산 문제를 의뢰했다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SNC는 당시 한인사회에서 제법 알려진 투자회사였습니다. 저 역시 대표 피터 손과 정진광 부사장을 잘 알고 있었구요. 무엇보다 지역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던 유지와 사업가, 자영업자, 주부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SNC에 돈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SNC가 파산하는 겁니까?” 저는 곧바로 SNC의 파산 문제를 맡았다는 변호사에게 연락했습니다.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맞다”는 답변을 하더군요.

그 순간 기자로서 감이 왔습니다. ‘이건 파장이 크겠다.’ 

저는 바로 취재에 들어갔고 확인된 내용을 정리해 신문 1면에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취재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SNC에 투자했다는 지역 한인들로부터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내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른 투자자들도 연락이 옵니까?”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 사건의 규모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투자자들은 서로 연락하기 시작했어요.

각자 따로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 모여 상황을 확인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도 모임 장소를 알아봐 주웠죠.

그 모임은 이후 SNC 사건을 취재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투자자들이 모이자 그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누구의 소개로 투자했는지, 얼마를 맡겼는지, 어떤 수익을 약속받았는지, 실제로 얼마를 받았는지, 아직 얼마가 SNC에 남아 있는지….

한 사람씩 자신의 투자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했습니다.

한 사람을 취재하면 또 다른 사람이 나왔고, 하나를 확인하면 새로운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SNC 관련 속보 기사를 계속 써나갔습니다.

기사가 새로운 피해자를 불러왔고, 그 피해자의 이야기가 다시 새로운 기사가 됐습니다.





SNC는 어떤 회사였나.


SNC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SNC의 뿌리는 피터 손이 1999년 설립된 Son and Company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피터 손과 정진광은 2003년 SNC Asset Management와 SNC Investments를 설립하고 외환거래, 즉 Forex 투자를 본격적으로 내세웠습니다.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 플레젠튼을 중심으로 운영됐고 뉴욕에도 사무실을 두었습니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국제 외환시장에서 운용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전문 투자회사라는 것이 SNC가 내세운 사업모델이었습니다.

특히 한인사회를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한인신문에 광고를 내고 판매 에이전트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습니다. SNC가 내세운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월 2~3%의 수익률이었습니다. 회사 측은 외환거래에서 연간 50%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연 24~36%의 수익을 지급할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당시 한인 투자자들에게 SNC는 처음부터 수상한 회사로 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외환이라는 국제 금융상품을 다루는 전문 투자회사처럼 보였고, 실제로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금이 지급되면서 신뢰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연방수사를 통해 드러난 실체는 전혀 달랐습니다.

실제 외환거래는 극히 적었고 그마저도 수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 구조였습니다. 문제는 2008년 10월 SNC의 영업은 중단됐었음에도 계속해서 회사 운영은 하면서 투자는 계속받아왔죠.


모든 것은 ‘월 2~3%’에서 시작


SNC가 투자자들에게 내세운 것은 외환거래, 즉 Forex Trading이었습니다.

외환시장에서 전문적으로 돈을 운용해 매달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다고 했어요.

투자자들에게는 매달 수익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처럼 표시된 계좌명세서까지 제공됐습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돈도 나왔어요. 수익금을 받은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도 했죠.

“나는 계속 받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친구와 지인이 투자했죠. 

특히 한인사회는 서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고, 사업하면서 만나고, 각종 한인단체 행사에서도 만났습니다. 한인사회에서 알려진 사람이 이미 투자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상당한 신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SEC(증권거래위원회)는 SNC가 한인신문에 광고를 내고 판매 에이전트를 활용해 한인 투자자들을 집중적으로 모집했다고 밝혔습니다. SEC는 이를 가까운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이용한 전형적인 affinity fraud방식으로 설명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대만에서도 투자자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당시 피해자들을 취재하면서 보았던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였습니다.  그런데 외환거래로 번 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취재할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 나중에 연방수사를 통해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SNC가 고객의 돈으로 실제 외환거래를 한 규모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전체적으로 손실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지급했던 월 2~3%의 수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사진 설명> 미국 언론에서까지 취재된 SNC 투자 사기 사건 

돌려 막는 폰지 사기


새로운 투자자가 맡긴 돈이었습니다. 새 투자자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했습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였습니다.

CFTC에 따르면 입급된 돈은 다른 곳으로도 흘러갔다고 합니다.

연방당국은 투자금 일부가 피터 손의 고급주택 모기지, 컨트리클럽 비용과 주택 관련 비용 등에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손의 아내 앤 리에게 실제 업무를 하지 않았는데도 급여 명목으로 돈이 지급됐고, 일부 투자자금은 해외 계좌로 옮겨졌다고 SEC는 주장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보고 있던 계좌명세서의 수익은 실제 외환거래 수익이 아니었습니다.

종이 위의 숫자였습니다.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돈은 들어왔습니다

폰지사기는 새로운 투자금이 계속 들어오는 동안에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CFTC에 따르면 SNC는 영업 마지막 1년 동안에도 약 2,200만 달러의 신규 자금을 받았습니다. 2008년 6월 중순 이후에만 650만 달러 이상이 들어왔고, 회사 측은 고객들에게 돈을 인출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투자자들에게는 계속 수익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명세서를 보냈습니다.  CFTC가 확보한 기록에는 2008년 9월 26일자 계좌명세서까지 등장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NC의 영업은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CFTC는 2009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손과 정이 사라졌다(disappeared)”고 밝혔습니다. 

2009년 6월 CFTC는 SNC Asset Management, SNC Investments와 CEO Peter Son, CFO Jin K. Chung을 상대로 San Francisco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CFTC가 파악한 규모는 최소 500명의 고객으로부터 최소 8,500만 달러였습니다. 같은 날 SEC도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SEC는 약 500명의 미국·한국·대만 투자자로부터 8,000만 달러 이상을 모집한 폰지사기라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8,500만 달러와 나중에 나오는 약 6,030만 달러는 구분해야 합니다.

8,000만~8,500만 달러는 당국이 파악한 모집자금 규모이고, 이후 형사사건에서 인정된 투자자들의 실제 손실액은 $60,302,886.59, 약 6,030만 달러였습니다. 


피터 손, 연방수사와 15년형


수사는 SEC와 CFTC의 민사조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FBI와 IRS도 형사수사에 참여했습니다.

피터 손은 2009년 6월 연방 형사사건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2010년 4월 9일 wire fraud conspiracy와 money laundering conspiracy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CFTC

그리고 2010년 7월 30일, 연방법원은 피터 손게 징역 180개월, 즉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법원은 피해자들에게 $60,302,886.59를 배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민사사건에서도 별도로 500만 달러의 민사제재금이 부과됐습니다. 법원은 손과 SNC 회사들의 관련 상품거래 활동을 금지했고, 손의 아내 앤 리에게도 부당하게 받은 것으로 인정된 30만 달러를 반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한국으로 사라진 정진광


하지만 정진광의 이야기는 훨씬 오래 이어졌습니다.

피터 손에게 15년형이 선고됐지만 사건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정진광(Jin K. Chung)’이 남아 있었습니다.

SNC에서 CFO를 맡았던 정진광은 회사가 무너지기 직전 한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2009년 당시 SEC 관계자는 정씨가 한국에 체류 중이며 그의 미국 송환 문제는 연방검찰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터 손에게 15년형이 선고된 2010년에도 연방 당국은 정씨가 한국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한국 관계당국에 검거를 요청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정진광의 행방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투자자들의 돈은 어디로 갔는지, 해외로 빠져나간 돈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건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싯점, 발생 후 10년이 넘은 2019년 2월, 정진광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송환(extradited)됐다는 연방검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제가 당시 취재 과정에서 전해 들은 정진광의 검거 과정은 뜻밖이었습니다.

거대한 금융사건의 핵심 인물이 거창한 추적 작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교통 단속에서 신원이 드러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던 중 길을 건너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지만 당시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고, 신원 확인을 위해 지역 지구대로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신원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국제수배 대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수천만 달러의 투자사건으로 미국 당국이 찾고 있던 사람이 우연한 거리 단속에서 신원이 드러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해 9월 그는 오클랜드 연방법원에서 자금세탁 혐의에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정 자신도 400명 이상의 피해자가 약 6030만불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또 SNC가 문을 닫기 전 마지막 4개월 동안 회사 돈 63만 달러 이상을 자신의 개인계좌로 옮긴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1월 21일 연방법원의 Jeffrey S. White 판사는 정에게 징역 120개월, 즉 1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6월, 지역 일간지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 하나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출소한 정진광이 ICE, 즉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정씨를 다시 체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ICE LA 지부 발표를 인용한 2026년 6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형사 처벌을 마친 뒤 ICE에 체포됐으며 추방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구금될 예정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사진 설명> SNC 부사장이였던 정진광은 10년 형을 받은뒤 나온 후에도 ICE애 체포되어 결구 한국으로 추방됐다. 


깨어진 사람사이의 신뢰


제가 처음 SNC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시작한 때로부터 생각하면 참으로 긴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돈보다 더 많이 잃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SNC 사건은 단순한 금융사기사건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방당국이 확인한 피해액은 약 6,030만 달러였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그러나 제가 당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면서 느꼈던 피해는 숫자로만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투자했습니다. 소개한 사람 역시 다른 사람을 믿고 투자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역시 돈을 잃은 피해자였죠. 그런데 돈이 사라지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신이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신 때문에 투자한 것 아니냐.”

가족과 친구, 사업상 지인 사이의 오랜 관계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SNC 사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높은 수익률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인사회에서 가장 소중했던 ‘신뢰’가 투자금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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