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딸, 재벌가 사위 그리고 20만 달러
캘리포니아 11개 은행에 나눠 들어간 돈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입니다.
제가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고 한인사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취재하기 시작하던 무렵, 좀처럼 믿기 어려운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평범한 유학생이나 한인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은 당시 한국 대통령의 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의 아들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씨와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아들 최태원 씨였습니다.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했습니다. 당시 스탠포드 대학 인근에서 생활하던 이 부부와 관련해 약 20만 달러의 현금이 캘리포니아 여러 은행에 나누어 입금된 사실이 미국 수사기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 20만 달러는 지금보다 훨씬 큰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 것은 돈의 액수보다 입금 방법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산호세 연방법원
왜 돈을 여러 은행에 나누어 넣었을까
미국 금융기관은 1만달러를 넘는 현금거래를 정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현금은 한 은행에 한꺼번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1만 달러 미만으로 나뉘어 캘리포니아 11개 은행에 입금됐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을 흔히 ‘structuring’이라고 부릅니다.
큰 현금거래가 금융당국에 보고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금액을 작게 나누어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수사당국은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법정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스위스 은행’
제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산호세 연방법원의 법정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사건을 맡은 사람은 James Ware 연방판사였습니다. 당시 법정 방청석에는 저를 포함해 10여 명의 한인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상당수가 이 사건을 취재하러 온 한인 언론 관계자들이었습니다. 그중 한명은 제가 법정 용어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하고자 변호사 한명도 동행시켰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재판 과정에서 James Ware 판사가 두 사람에게 비교적 가벼운 1년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순간 검사 측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이끌었던 연방검찰 책임자는 John Mendez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검사 측에서 마이클 지글러 검사(LA 타임즈 보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석 쪽을 바라봤습니다. 아마 앉아 있던 한인들이 언론 관계자라는 것을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문제가 된 현금을 묶고 있던 돈띠에 스위스 은행의 표시 또는 관인이 찍혀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단순히 미국에서 20만 달러를 여러 은행에 나누어 입금했다는 사건과 ‘스위스 은행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현금’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한국에서 ‘스위스 비밀계좌’라는 말 자체가 권력층의 해외 비자금과 연결돼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사자는 현직 대통령의 딸이었습니다.
법정 밖으로 나오자 취재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스위스 은행’이라는 단어가 한국으로 날아갔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이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몇 년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발견됐던 약 20만 달러의 출처가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당시의 의혹과 최종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30여 년 전 신문을 다시 보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이 마치 확정된 사실처럼 읽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당시 한국 검찰은 자금 출처를 조사했고, 노소영·최태원 부부는 결혼과 관련해 받은 돈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스위스 비자금이 미국으로 흘러왔다’고 단정하는 것은 당시 확인된 사실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저는 이번 연재에서 기억과 기록을 다시 맞춰보려고 합니다.
<사진 설명> 1993년 노소영 최태원 법정 선고공판에서 담당 마이클 지글러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스위스 은행의 currency wrappers(현금 돈띠)가 발견됐고 돈의 출처와 관련해 한국 정치권과 연결된 사람들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기사화된 크리스챤 사이언스 모니터의 신문
당시 실리콘밸리 한인사회가 놀랐던 이유
지금 생각하면 20만 달러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장소가 미국,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던 캘리포니아였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실리콘밸리 한인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한인 식당이나 마켓에 가면 서로 얼굴을 아는 경우가 많았고, 큰 사건 하나가 터지면 며칠 동안 한인사회 전체의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그런 곳에서 한국 대통령 가족과 재벌가가 관련된 사건이 미국 연방 사법기관의 기록에 등장했습니다. 한국 정치권과 재벌의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생활하던 캘리포니아의 은행과 법원 이야기로 바뀐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실리콘밸리라는 곳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반도체와 컴퓨터를 만드는 곳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정치와 재벌, 돈과 권력의 이야기도 태평양을 건너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 같은 두 사람의 이혼 소송에서 다시 ‘노태우 비자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 취재수첩의 한 페이지와 오늘의 뉴스가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1990년 미국에서 문제가 된 약 20만 달러와 최근 이혼소송에서 거론된 300억원이 같은 돈이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두 사건을 직접 연결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기자로서 그 두 장면을 모두 지켜본 저에게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묘한 역사의 반복처럼 느껴집니다.
30여 년 전에는 20만 달러의 출처가 세상의 궁금증이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300억원의 출처와 행방이 다시 세상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사람도 세월도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둘러싼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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