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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야사 30년 2화 : 서니베일 살인사건

 Applied Materials 한국 책임자 피살사건

 

1993년 여름이었습니다.

노소영·최태원 씨의 20만 달러 사건을 취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어요. 

어플라이드 머터리얼스 한국 책임자가 서니베일의 호텔에서 살해됐다는 겁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어플라이드 머터리얼스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였고, 한국 반도체 산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던 회사였죠. 특히 엔지어니어링, 마케팅, 어카운팅 분야에 근무하는 한인들이 많았어요.

피해자는 당시 49세였던 윤한석 씨였습니다. 한국에는 부인과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을 열면 경찰 발표와 관련 기사가 줄줄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에 전화를 걸고, 회사 관계자를 찾고, 한인사회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사건의 조각을 맞춰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취재한 이 사건은 한인신문 1면 기사로 나갔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긴장감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출장길에 오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


윤 씨는 1993년 8월 회사 업무를 위해 실리콘밸리에 와서 서니베일의 Marriott Residence Inn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 취재하면서 들었던 기억으로는 윤 씨를 픽업하기 위해 숙소를 찾은 한국인 직원이 사건을 알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0여 년 뒤 당시 미국의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조금 다르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가 한 씨가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호텔에서도 체크아웃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결국 호텔 측의 요청을 받은 경찰이 객실을 확인하면서 시신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차이를 굳이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사건이 막 터졌을 때 기자가 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수사가 모두 끝난 뒤 기록된 사실이 항상 똑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윤 씨가 주방용 칼에 10여 차례 찔렸다는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기록에는 40곳이 넘는 자상과 베인 상처가 있었다고 나옵니다.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그 장면을 더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저는 며칠 뒤 그 가족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호텔방에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윤 씨가 호텔방에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은 당시 21세였던 한인 교포 Hui Kyung ‘Cindy’ Kang이었습니다.

후일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그해 6월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의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났고, 윤 씨가 8월 미국에 출장 왔을 때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Kang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를 타고 서니베일까지 내려왔고 한 씨가 택시비를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밤 두 사람은 호텔방에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당시 취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윤 씨가 한국에 있는 부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통화 도중 Kang이 소리를 냈고, 전화가 끝난 뒤 한 씨가 이를 심하게 나무랐다는 이야기가 당시 취재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미국의 당시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실제로 운 씨가 그날 밤 10시 40분경 한국의 가족과 전화통화를 했고, 그 후 객실 소음 때문에 호텔에 신고가 들어왔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통화 때문에 살인이 일어났다고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제가 당시 취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로 남겨두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호텔방 문 앞까지 왔습니다.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 때문에 다른 투숙객의 신고가 들어왔고 호텔 보안직원이 객실 문 앞까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Kang도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이 다퉜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소음 신고가 다시 들어오자 직원이 또 객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객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호텔방은 조용해졌습니다.

윤 씨는 그 방에서 다시 살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사라졌다.

사건이 벌어진 뒤 Kang은 윤씨가 빌렸던 렌터카를 타고 서니베일을 떠났습니다.

윤씨의 한국 신용카드도 소유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덴버와 필라델피아를 거쳐 뉴욕으로 이동했고, 며칠 사이 상당한 금액을 사용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당시는 한국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미국 경찰이 지금처럼 즉시 추적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녀의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저도 당시 동부로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계속 취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뜻밖이었습니다.

뉴욕에서 보모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쫓기던 Kang은 뉴욕 지역에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가정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보모(nanny)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별도의 사건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지문이 조회됐고, 서니베일 호텔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호텔방 전화기에서 발견된 피 묻은 지문역시 Kang의 지문과 일치했습니다.

그녀는 뉴욕주 베드포드에서 체포돼 캘리포니아로 송환됐습니다. 이때 산호세 머큐리 뉴스도 사건을 연속적으로 보도했던 것으로 후일 기록돼 있습니다.

서니베일 호텔에서 시작된 사건이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까지 갔다가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진 설명> 서니베일 살인 사건의 피고인 신디 강씨


3년 뒤 내려진 결론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1급 살인과 강도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에서는 당시 호텔방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여러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30여 년 뒤 제가 다시 자세히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확인되는 법적 결론은 분명합니다. 1996년 Kang은 2급 살인과 강도 혐의에 유죄를 인정했고, 16년에서 종신형(16 years to life)을 선고받았죠.

그렇게 법적으로는 사건에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어플라이드 머터리얼스에서 열린 추도식


사건이 발생한 뒤 어플라이드 머터리얼스에서 윤씨를 위한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저도 취재를 위해 그곳에 갔습니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추도식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행사가 어떤 순서로 진행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한 장면만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살인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였습니다. 누가 마지막으로 호텔방에 있었는지, 어떤 흉기가 발견됐는지, 용의자는 어디로 갔는지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도식장에서 가족들을 보는 순간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며칠 동안 ‘피해자 윤한석 씨’라고 기사에 쓰고 있던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남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였기 때문이죠.

회사 업무를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가 끝내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자로서는 사건을 써야 했지만, 그날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30여 년이 지나 이 사건을 다시 떠올려보니 이상하게도 경찰차나 호텔방보다 그 추도식장의 가족 모습이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사건이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던 이유


이 사건에는 저 개인적으로도 묘한 인연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피의자 Kang의 오빠를 알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한인사회에는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비디오 가게 업주들의 모임도 활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Kang의 오빠는 당시 그런 한인 비디오업계 모임에서 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피의자는 신문에서 처음 이름을 본 완전히 낯선 집안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족과 연결된 사람을 이미 한인사회에서 알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당시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보다 한인사회가 훨씬 작았습니다. 몇 사람만 건너면 서로 알았습니다.

어제 한인 행사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이 다음 날 취재수첩에 등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피해자의 추도식에 가서 한국에서 온 유가족을 보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피의자의 가족과 연결된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자로서는 냉정하게 사실을 취재해야 했지만, 작은 이민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보니 마음까지 완전히 거리를 두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 사건이 지금까지도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취재수첩에는 또 하나의 사건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반도체 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작은 칩은 금보다 비싸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장물시장을 쫓던 FBI의 함정수사에 한인 사업가가 걸려들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실리콘밸리 한인사회 야사 30년
3화 — 금보다 비쌌던 반도체 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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