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파타고니아를 즐겨 입을까
실리콘밸리에서 30년 가까이 기업과 사람들을 취재하다 보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옷입니다.
구글이나 메타 같은 빅테크 캠퍼스를 방문하거나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고,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모여 있는 샌드힐로드(Sand Hill Road)를 지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눈에 들어오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Patagonia)입니다.
가슴 한쪽에 작은 로고가 붙어 있는 플리스 재킷이나 조끼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실리콘밸리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궁금했어요. “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파타고니아를 이렇게 좋아할까요?” 가장 간단한 이유는 편하고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날씨는 파타고니아 같은 옷과 궁합이 잘 맞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지만 낮에는 따뜻해지는 날이 많습니다. 밖은 따뜻한데 사무실에 들어가면 냉방 때문에 쌀쌀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두꺼운 외투보다는 가벼운 플리스나 조끼 하나가 편합니다. 자동차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걸치면 됩니다.
하지만 날씨와 편리함만으로 파타고니아의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사진 설명>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인이나 엔지니어들을 만나면 종종 파타고니아 조기나 셔츠를 입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숨어있는 실리콘밸리 문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성공한 사람의 상징이 잘 재단된 정장과 넥타이였다면 실리콘밸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옷을 입었느냐보다 무엇을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자일 수도 있습니다. 후디 차림으로 카페 구석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가진 스타트업 CEO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리콘밸리에서는 지나치게 차려입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제가 기업들을 취재하면서 만난 기업인이나 엔지니어들도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좋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옷이 얼마나 비싼지를 굳이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파타고니아는 아주 절묘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결코 싼 옷은 아닙니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처럼 화려하게 가격과 지위를 드러내지도 않죠. 디자인은 단순하고 기능적이며 비교적 오래 입을 수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를 입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는 비싼 옷을 입었습니다”라고 과시하는 것보다 “나는 좋은 장비를 선택했습니다”라는 표현에 더 가깝습니다.
<사진 설명> 팔로알토 파타고니아에 들어가보면 매출의 1%를 지역 환경 비영리단체와 풀뿌리 환경단체에 지원하고 있다는 글귀각 적혀있는 사인판을 볼 수 있다.
엔지니어와 닮은 꼴
이것은 엔지니어들의 사고방식과도 묘하게 닮았습니다.
좋은 제품은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복잡해서도 안 됩니다. 내구성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타고니아 역시 기능성과 내구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새 제품을 계속 사도록 권하기보다 기존 제품을 수선하고 오래 사용하도록 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환경에 대한 철학이 더해집니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2022년 회사의 소유구조를 바꾸면서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환경 보호와 연결하는 독특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파타고니아가 내놓은 문구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부 실리콘밸리 기술자들에게 이런 기업 철학은 브랜드를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파타고니아 현상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봅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부를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스톡옵션으로 큰돈을 번 엔지니어라고 해서 매일 고급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주차장에 비싼 자동차를 세워놓고도 청바지와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조용한 부(quiet wealth)’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이런 문화와도 잘 맞습니다.
아는 사람은 가격을 알고 브랜드의 철학도 압니다. 그러나 굳이 “나는 돈이 있습니다”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산악인과 아웃도어 애호가들이 입던 파타고니아가 엔지니어들에게 퍼지고, 다시 스타트업 창업자와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에게까지 번지면서 어느 순간 특정 계층을 상징하는 옷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셔츠 위에 걸친 파타고니아 조끼는 샌드힐로드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너무 흔해져 테크 업계의 ‘유니폼’이라는 농담까지 나왔습니다.
HBO 드라마에서도 소개
HBO 드라마 ‘실리콘밸리 제작진’도 등장인물의 의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옷차림을 조사했습니다. 신발과 백팩, 헤어스타일까지 관찰했는데 파타고니아가 이 지역의 패션을 표현하는 중요한 브랜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결국 정장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정장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어쩌면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리콘밸리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선택한 자유로운 옷차림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새로운 드레스 코드가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 파타고니아를 입은 엔지니어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장을 벗어던진 실리콘밸리는 결국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장을 만들어냈다고.
엔지니어와 닮은 꼴
이것은 엔지니어들의 사고방식과도 묘하게 닮았습니다.
좋은 제품은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복잡해서도 안 됩니다. 내구성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타고니아 역시 기능성과 내구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새 제품을 계속 사도록 권하기보다 기존 제품을 수선하고 오래 사용하도록 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환경에 대한 철학이 더해집니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2022년 회사의 소유구조를 바꾸면서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환경 보호와 연결하는 독특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파타고니아가 내놓은 문구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부 실리콘밸리 기술자들에게 이런 기업 철학은 브랜드를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파타고니아 현상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봅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부를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스톡옵션으로 큰돈을 번 엔지니어라고 해서 매일 고급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주차장에 비싼 자동차를 세워놓고도 청바지와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조용한 부(quiet wealth)’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이런 문화와도 잘 맞습니다.
아는 사람은 가격을 알고 브랜드의 철학도 압니다. 그러나 굳이 “나는 돈이 있습니다”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산악인과 아웃도어 애호가들이 입던 파타고니아가 엔지니어들에게 퍼지고, 다시 스타트업 창업자와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에게까지 번지면서 어느 순간 특정 계층을 상징하는 옷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셔츠 위에 걸친 파타고니아 조끼는 샌드힐로드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너무 흔해져 테크 업계의 ‘유니폼’이라는 농담까지 나왔습니다.
HBO 드라마에서도 소개
HBO 드라마 ‘실리콘밸리 제작진’도 등장인물의 의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옷차림을 조사했습니다. 신발과 백팩, 헤어스타일까지 관찰했는데 파타고니아가 이 지역의 패션을 표현하는 중요한 브랜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결국 정장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정장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어쩌면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리콘밸리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선택한 자유로운 옷차림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새로운 드레스 코드가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 파타고니아를 입은 엔지니어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장을 벗어던진 실리콘밸리는 결국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장을 만들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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