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전자회사들의 빛과 어둠
조립회사에서 시작한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30년 뒤 다시 부는 제조업의 봄바람
실리콘밸리 지역으로 이민을 왔거나 유학와 학업믈 마친 한인들은 첫 직장으로 전자회사에 입사한 사례가 꽤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실리콘밸리 지역의 전자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가라 고용의 기회가 많았던거죠. 물론 고 퀄리티 엔지니어링 잡도 있지만 초창기 이민자들에게는 어셈블리 조립직 근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1990년대의 대형 조립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조립라인이 첫 직장인 한인 이민자들
1990년대 실리콘밸리 한인 전자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한인 이민자 부부들이죠. 지금은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구글과 애플, 엔비디아의 엔지니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기자로 현장을 뛰던 당시에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갓 이민 온 사람들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일자리 가운데 하나가 전자회사의 조립직이었죠. 영어가 서툴러도 손이 빠르고 성실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었기때문입니다. PCB에 작은 부품을 꽂고 납땜을 하고, 확대경으로 불량을 검사하고, 완성된 보드를 포장했습니다. 특히 제 기억에 남는 것은 부부가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침이면 도시락을 들고 함께 출근했습니다. 어떤 집은 남편이 낮 근무를 하고 아내가 저녁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부가 번 돈으로 아파트 렌트를 내고 중고차를 사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조금씩 돈을 보내며 미국 생활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실리콘밸리의 역사책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았던 당시 한인사회의 진짜 아메리칸 드림은 어쩌면 그 조립라인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CEO였던 사람보다 납땜 인두를 잡고 미국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하루 종일 작은 전자부품을 들여다보고 퇴근하면 눈과 어깨가 아팠지만, 부부가 함께 버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이들만큼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자.” 그것이 당시 많은 이민 1세대가 견딜 수 있었던 힘이었던 것이죠.
전자업계의 흥망성쇠
너무 빨리 성장했던 산업, 엄청난 돈이 움직였던 전자부품 시장, 대기업과 하청업체 사이의 힘의 차이, 그리고 그 틈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달렸던 한인 사업가들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전자회사를 한다는 것은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습니다. 산호세와 산타클라라 곳곳의 작은 공장에서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PCB에 부품을 꽂고 납땜하고 조립해 대형 전자회사에 납품했습니다. 주문이 한번 크게 들어오면 직원이 수십 명씩 늘었습니다. 공장을 넓히고 장비를 사고 좋은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 한인 사장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자로서 가까이에서 본 세계는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량을 주는 회사와 받아야 하는 회사 사이에는 분명한 힘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갑과 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문을 주는 회사가 가격을 깎으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납기를 앞당기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맞춰야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주문이 끊기면 그동안 늘려놓은 직원과 장비와 공장은 고스란히 하청업체의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는 그렇게 성장했다가 사라진 전자회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형 OEM이나 벤더가 주문을 주면 하청 제조업체는 그 물량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가격을 낮추라고 하면 낮춰야 했고, 납기를 앞당기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맞춰야 했습니다.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직원을 뽑고 장비를 들이고 공장을 넓혔습니다. 그때는 회사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위험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주요 고객 한두 곳이 주문을 다른 회사로 돌리면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주문은 없어졌지만 직원은 남았습니다.장비도 남았습니다.공장 임대료도 남았습니다.은행 빚도 남았습니다. 제가 당시 한인 전자업계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죠.
한인 전자 업체의 그늘
밖에서 보면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CEO였어요.
그러나 그들 CEO들은 회사 안에서는 다음 달 직원 월급과 은행 대출금을 걱정해야 하는 사장들이었습니다.
한인 전자업계의 대표적인 업체로 알려진 USM이 파산한 사례는 좋은 실례였죠. 한때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던 회사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직원도 수백 명 규모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결국 회사는 무너졌습니다.
1992년 USM은 Chapter 11을 신청했고 이후 Chapter 7 청산으로 넘어갔습니다. 파산법원 기록에는 Silicon Valley Bank와의 대출관계와 체불임금 문제가 상세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회사가 무너지면서 피해가 사장과 은행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으며 임금이 밀린 상태에서도 일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공장 문이 닫혔습니다. 은행에는 담보가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자신이 일했다는 사실밖에 없었습니다.
USM이 문을 닫은 뒤의 일은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기자로 이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회사가 파산했다는 사실보다 제 기억에 더 남아 있는 것은 월급을 받지 못한 한인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USM에는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
그들에게 한 달 월급은 단순한 월급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렌트도 내야 했고 자동차 할부금도 내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제 막 미국 생활의 기반을 만들어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USM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은 회사가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참고 일하면 밀린 월급도 받을 수 있고 회사도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것도 힘든데 이미 일한 돈까지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한인 직원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Korean Resource Center의 도움을 받아 체불임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이들은 산호세에서 Silicon Valley Bank를 상대로 시위까지 벌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도 오래된 기억이 조금씩 살아납니다. 저 역시 당시 이 노동자들을 취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0년이 넘은 일이라 지금은 누구를 어디에서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무너진 뒤 월급을 받지 못한 한인 직원들이 모여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장면은 기억 한쪽에 남아 있습니다. 아싑게도 당시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었죠
.ATI Electronics 대표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도 제가 취재했던 기억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돌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확인되지 않은 원인을 다시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의 사레는 Twin Technology 사건이었죠.
산호세에서 PCB 조립사업을 하던 회사였던 이 회사의 운영자인 James Ko와 Joanne Choi 등이 DRAM 거래에서 발생한 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문제로 IRS와 FBI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연방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과 배상명령을 받았습니다.
<사진 설명> USM 전자업체의 파산으로 임금을 받지못한 근로자들이 회사의 채무 권리를 갖는 실리콘밸리 은행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30년 만에 다시 부는 봄바람
아메리칸 드림에는 분명 그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늘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과 기업에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살아남은 전자 제조업체가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다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
AI 하드웨어, 반도체 장비, 방산, 항공우주, 의료기기처럼 가격만큼 속도와 기술, 품질, 보안, 고객과의 거리가 중요한 제품이 늘어나면서 현지 EMS 업체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죠.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산호세의 Green Circuits입니다.
Green Circuits는 2018년 Power Design Services와 합병하면서 당시 직원 200명이 넘었고 약 5천만 달러 규모의 EMS 업체가 됐고 이후에도 고난도·quick-turn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2023년에는 업계 전문지로부터 EMS Company of the Year로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2026년 6월 Green Circuits는 다시 한번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투자회사인 Metatron Private Equity가 회사를 인수한 것이지요. 거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꽤 성공적인 매각이었고 새 투자자는 Green Circuits가 항공우주·방산, 의료, 산업 및 첨단기술 분야에서 구축한 고난도 전자제조 역량과 고객관계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회사도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북미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동남아시아로 생산이 이동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단순 대량생산으로 경쟁하기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회사들은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단순히 싸게 많이 만드는 대신 빠른 시제품 제작, 소량 다품종, 고난도 PCB 조립, 의료기기, 항공우주·방산, 반도체 장비와 같은 고부가가치 생산으로 옮겨갔습니다.
살아남은 업체들에게는 다시 봄바람이 불고 있어요.
어쩌면 그것이 실리콘밸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대의 성공 공식이 무너지고 수많은 회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그 기술이 다시 제조업체를 필요로 한 것이지요.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