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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150년 8화 : 플랫폼의 시대

 스마트폰에서 인공지능으로

서버실이 사라진 자리, AI와 바이오 혁명이 

 


2010년대 실리콘밸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플랫폼(Platform)’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가 반도체와 PC의 시대였고, 2000년대가 인터넷과 검색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에는 몇몇 기업이 만든 플랫폼 위에서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쇼핑하고, 소통하고,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Google은 검색과 광고의 플랫폼을 만들었고, Facebook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Apple은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었으며, Amazon은 전자상거래를 넘어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Uber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과 자동차를 연결하면서 이동 자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실리콘밸리에서는 자동차라는 전통 산업마저 다시 정의하는 회사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Tesla였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컴퓨터’로


제가 오랫동안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취재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본 것 가운데 하나가 Tesla의 등장이었습니다. 멘로 파크에서 시작된 테슬라에 기자로서 방문하게 된 동기는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일행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할시 테슬라를 방문해 시승한 당시 분위기를 취재했었죠.  

테슬라는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에서 경쟁력의 핵심을 엔진과 변속기, 생산라인과 공급망의 변화를 타켓으로 했죠. 전기모터와 배터리,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결합된 하나의 기술 플랫폼으로 본 것입니다. 특히 자동차를 판매한 뒤에도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기존 기능을 개선하는 방식은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익숙한 개념이 됐지만, 자동차가 출고된 뒤에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계속 변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당시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인 제품 개념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Tesla 차량은 지금도 OTA(Over-the-Air) 방식으로 소프트웨어와 기능을 업데이트합니다.

이것이 제가 현장에서 보아온 전형적인 실리콘밸리식 사고였습니다.

기존 산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술의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는 것.

컴퓨터에서 시작된 이 사고방식은 휴대전화로 옮겨갔고, 자동차로 넘어갔으며, 결국 의료와 생명과학으로까지 확장됐습니다.


NVIDIA의 ‘두 번째 인생’


이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NVIDIA’입니다.

‘NVIDIA’는 1993년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코스키, 커티스 프리엠이 설립했습니다. 1999년에는 GeForce 256을 내놓으며 GPU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알렸죠. 처음에는 게임과 3D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GPU는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연산에 강했습니다. NVIDIA는 2006년 CUDA를 내놓아 GPU의 연산 능력을 그래픽 이외의 과학·컴퓨팅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딥러닝 모델 AlexNet이 NVIDIA GPU를 활용해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면서 GPU와 인공지능의 결합 가능성이 세상에 강하게 각인됐습니다. 게임 화면을 더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발전한 반도체가 수십 년 뒤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시키는 핵심 연산 장치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만들어진 목적과 전혀 다른 곳에서 기술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것.

인터넷도 그랬고, 스마트폰도 그랬으며, GPU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버실’의 실종


2010년대 팔로알토와 산호세 주변의 스타트업들을 취재하면서 제가 체감했던 또 하나의 변화는 서버실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인터넷 회사를 시작하려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 서버를 구입하고 네트워크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는 서버 랙이 들어서고 냉방장치가 돌아갔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서비스 개발뿐 아니라 서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일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창업자들은 서버를 주문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AWS가 있었습니다.

Amazon은 2006년 S3를 출시했고 같은 해 EC2를 공개했습니다. 필요한 저장공간과 컴퓨팅 능력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EC2는 서버 용량을 확보하는 데 걸리던 시간을 크게 줄이고 필요에 따라 자원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변화는 기술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업의 경제학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당한 하드웨어 투자가 필요했지만 클라우드가 확산되면서 작은 팀도 훨씬 적은 초기 자본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시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빨리 만들고,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이른바 ‘린 스타트업’ 방식이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컴퓨팅 비용 구조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도 ‘소유’에서 ‘사용’으로 


클라우드와 함께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SaaS, 즉 Software as a Service의 확산입니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회사 컴퓨터마다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클라우드가 발전하면서 브라우저만 열면 업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Salesforce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가 성장했고, 이후 Slack과 Zoom 같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소프트웨어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서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으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지금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당시의 변화는 훨씬 근본적이었습니다.

서버를 소유할 필요가 없어졌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필요도 줄었습니다.

컴퓨팅 자체가 하나의 서비스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컴퓨팅 능력은 곧 새로운 대상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상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생명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시선이 ‘생명의 코드’로 


컴퓨팅 비용이 내려가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IT와 생명과학의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이미 훌륭한 토양이 있었습니다.

스탠퍼드와 UC 버클리, UCSF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생명과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스탠리 코언과 허버트 보이어가 개척한 재조합 DNA 기술은 이후 바이오산업의 중요한 과학적 기반이 됐습니다. 보이어는 벤처투자가 로버트 스완슨과 함께 1976년 Genentech을 설립했습니다. 여기에 컴퓨터 기술이 결합했습니다.

유전자 분석 장비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데 클라우드와 고성능 컴퓨팅이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990년 시작해 2003년 완료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거대한 국제 연구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게놈 분석 비용은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2010년 당시에도 개인의 게놈을 1,000달러 이하로 분석하는 기술을 중요한 목표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생명과학이 데이터 산업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CRISPR — 생명의 코드를 ‘편집’하다

2012년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UC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연구팀이 CRISPR-Cas9을 이용한 정밀한 유전자 편집 기술의 기반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이 기술은 세계 각국 연구실로 확산되면서 생명과학 연구의 방식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가 프로그램의 코드를 찾아 수정하듯 생명과학자들이 특정 DNA 서열을 찾아내고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물론 컴퓨터 코드를 수정하는 것과 생명체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복잡성과 윤리적 의미에서 동일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상징적인 변화였습니다. 몇년전 유전자 가위와 mRNA 등을 원하는 체내 조직과 세포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독점적 나노파티클 전달 플랫폼 '나노갤럭시(NanoGalaxy)'개발한 진에딧 이근우·박효민 공동 창업자를 버클리 대학에서 취재한 기억이 나네요. 


제가 30년 동안 지켜본 가장 큰 변화


지난 3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기업과 엔지니어, 창업자들을 취재하면서 수많은 기술을 보았습니다.  PC가 등장했고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했습니다. 검색엔진이 정보를 정리했고 스마트폰이 컴퓨터를 사람들의 손바닥 위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가 되자 저는 조금 다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술의 대상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처리하는 대상이 문서와 사진, 웹페이지를 넘어 자동차의 움직임과 사람의 행동,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와 질병 데이터로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드는 이 모든 데이터를 담는 거대한 그릇이 됐습니다.

GPU는 그 데이터를 계산하는 엔진이 됐습니다. 그리고 AI는 그 데이터 속에서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패턴을 찾아내는 도구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010년대는 스마트폰의 시대인 동시에 AI 시대를 준비한 10년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십억 명이 네트워크에 연결됐고, 클라우드에 엄청난 데이터가 축적됐으며, GPU의 병렬연산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동시에 유전체 분석과 바이오테크 분야에서도 데이터와 컴퓨팅의 결합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 모든 흐름은 서로 다른 산업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플랫폼이 데이터를 만들고, 클라우드가 데이터를 저장하고, GPU가 데이터를 계산하면서 AI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이제 인간의 언어와 이미지뿐 아니라 자동차, 로봇, 신약, 유전자와 생명 현상까지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던 시절만 해도 이곳의 상징은 반도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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