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던진 6,000개의 Intel 칩,
그리고 내가 알고 지내던 한인 사업가
199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칩은 단순한 전자부품이 아니었습니다.
돈이었습니다. PC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절이었죠.
인텔의 486과 펜튬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작은 상자 하나에 수십만 달러어치의 칩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사진 설명> 칩이 금과 같다는 말이 나돌정도로 귀했던 1995년의 인텔 486 칩.
칩 전문 절도 극성
창고에서 칩이 사라지고, 운송 중이던 트럭이 털렸습니다. 훔친 칩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장물시장까지 형성됐습니다.
1995년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실리콘밸리에서 칩 절도가 급증하면서 FBI가 적극적으로 함정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1993년 산타클라라의 Wyle Laboratories에서는 무장한 일당이 순식간에 약 74만 달러어치의 인텔 486 프로세서를 털어 달아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시 연방검사가 남긴 말이 그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Chips are like gold.” 칩은 금과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기자로서 이런 사건들을 계속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한인 사업가와 FBI 함정수사
그런데 어느 날 그 ‘금보다 비싼 칩’ 사건 속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습니다.
짐 최(Jim Choe)였습니다. 신문 속 이름이 낯설지 않았어요. 저는 짐 최 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김 씨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김 씨 역시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전자 관련 회사를 운영하던 여성 기업인이었습니다. 영어도 유창했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 실리콘밸리 전자업계는 지금보다 훨씬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한국계 여성이 직접 전자회사를 운영하며 미국 사람들과 영어로 사업을 하는 모습은 제 기억에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억척같은 성격 때문인지 종업원들로부터는 안좋은 소문들이 많이 들렸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이름이 지역신문에 등장했습니다.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장물 거래
인텔 칩, FBI, 함정수사 등 신문기사의 단어들이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의 이름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로서 참 묘한 순간이었습니다. 짐 최 사건은 1994년 8월 FBI의 함정수사에서 시작됐습니다. FBI가 준비한 미끼는 Intel 칩 6,000개였습니다
FBI 요원은 장물 판매자로 가장했습니다. 그리고 짐 최에게 Intel 칩 6,000개를 제시했죠.
요원은 이 칩들이 애리조나에서 배달 트럭을 털어 빼낸 장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칩 한 개의 가치는 약 400~600달러로 평가됐습니다. 전체 가치로 따지면 25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칩은 실제 장물이 아니었습니다.
인텔이 FBI의 함정수사를 위해 제공한 제품이었습니다.
짐 최가 체포됐을 당시 FBI는 그가 칩 구입 자금으로 사용할 35만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994년의 35만 달러였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적은 돈이 아닙니다.
<사진 설명> 인텔 칩 장물 구입혐의로 FBI에 채포돼 연방법원에서 유죄가 판결된 뒤 항소한 짐 최씨 법원 소장
“나는 장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제가 흥미롭게 기억하는 대목은 실제 훔친 인텔l 칩이 거래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FBI가 만들어 놓은 거래였습니다. 짐 최 씨도 재판에서 자신은 칩이 장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그의 변호인 역시 실제 거래에 사용된 제품 가운데 훔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며 배심원의 판단에 실망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논리는 달랐습니다. 실제 칩이 장물이었느냐보다 피고인이 장물이라고 인식하면서 거래에 참여하려 했느냐가 핵심이었습니다.
결국 사건은 산호세 연방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2주 동안의 재판 끝에 1995년 10월 연방 배심원단은 당시 36세의 프리몬트 사업가였던 짐 최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직후 James Ware 판사는 그를 연방보안관의 구금 상태로 넘겼습니다.
그 이름을 30년 뒤 다시 보면서 저는 또 다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James Ware. 1화에서 썼던 노소영·최태원 사건에서도 제가 보았던 바로 그 산호세 연방법원 판사였습니다.
영화같은 장물조직과 FBI
30년 뒤 취재수첩을 다시 펼쳐보니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장소가 연결되고, 사건이 연결됩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난 뒤 역사를 다시 보는 재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는 정말 칩 도둑들이 많았었습니다. 짐 최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한 사람의 형사사건입니다. 하지만 당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빼놓으면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죠. 1995년 크로니클 신문은 칩 절도를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호황 산업’에 빗대면서, FBI가 파악한 평균적인 칩 절도 피해액이 약 45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인텔을 비롯한 기업들은 수사기관의 함정수사를 위해 수백만 달러어치의 부품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더 영화 같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FBI와 경찰이 밀피타스 지역 가짜 인텔 창고까지 만들어 놓고 장물조직을 유인했습니다. 실제로 강도들이 그곳을 인텔 창고라고 믿고 접근했다가 대규모 체포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 실리콘밸리에서는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신문기사가 끝난 자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도 그 부부에 관한 이런저런 후일담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됐습니다. 제가 전해 들은 바로는 두 사람은 이후 부부의 인연을 정리했고, 김 씨는 남가주로 옮겨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제 귀에 들어온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30년 뒤 제가 다시 옮기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인생도 서로 다른 길로 흘러갔습니다.
그것 역시 30년이라는 시간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이 사건 역시 1면에 게재됐고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사건을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써 내려간 기사들이 훗날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역사 한 조각이 될 것이라고는 말입니다. 짐 최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장물 거래
인텔 칩, FBI, 함정수사 등 신문기사의 단어들이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의 이름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로서 참 묘한 순간이었습니다. 짐 최 사건은 1994년 8월 FBI의 함정수사에서 시작됐습니다. FBI가 준비한 미끼는 Intel 칩 6,000개였습니다
FBI 요원은 장물 판매자로 가장했습니다. 그리고 짐 최에게 Intel 칩 6,000개를 제시했죠.
요원은 이 칩들이 애리조나에서 배달 트럭을 털어 빼낸 장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칩 한 개의 가치는 약 400~600달러로 평가됐습니다. 전체 가치로 따지면 25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칩은 실제 장물이 아니었습니다.
인텔이 FBI의 함정수사를 위해 제공한 제품이었습니다.
짐 최가 체포됐을 당시 FBI는 그가 칩 구입 자금으로 사용할 35만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994년의 35만 달러였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적은 돈이 아닙니다.
<사진 설명> 인텔 칩 장물 구입혐의로 FBI에 채포돼 연방법원에서 유죄가 판결된 뒤 항소한 짐 최씨 법원 소장
<사진 설명> 크로니컬에서 보도된 FBI와 경찰이 밀피타스 지역 가짜 인텔 창고까지 만들어 놓고 장물조직을 유인해 대규모 체포로 이어진 사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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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다시 취재수첩을 펼쳐보면 그 뒤에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PC 산업이 폭발하던 실리콘밸리. 금보다 귀하다는 말을 듣던 반도체 칩. 그 칩을 노리던 전문 절도조직. 가짜 Intel 창고까지 만들어 범인을 기다리던 FBI.
1995년, 저는 이 사건을 반도체 칩 장물사건으로 바라봤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그 작은 인텔 칩 안에는 1990년대 실리콘밸리의 욕망과 성공, 범죄와 아메리칸 드림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다음 4화에서는 반도체 칩에서 한인사회의 밤거리로 무대를 옮겨서 <한인 룸살롱과 백인 경찰관>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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