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해야 할 경찰관, 왜 한인 업소 보호막이 되었나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한국의 음식과 문화만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 한인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국식 유흥문화도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옥녀봉, 수정…. 오래전 이 지역에서 생활했던 한인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들입니다.
저 역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 업소들에 대해 가보기도 했고 업소 주인들과도 안면식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인 유흥가에서 한국에서 젊은 여성들이 새로 왔다더라, 어느 업소에 경찰이 다녀갔다더라, 누가 업소를 뒤에서 봐준다더라… 카라같은 류머가 돌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생겨난 밤문화의 한 단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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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미국에 불법 취업해 일하던 한국인 여성이 미국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있는 모습.
FBI 등 연방 수사 기관 한인 룸살롱 타겟
“서니베일 경찰관이 한인 업소를 봐주고 있답니다.”
업소를 단속해야 할 경찰관이 오히려 업소에 단속정보를 알려주고 보호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인사회에서 흔히 떠도는 소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FBI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야기는 소문이 아니라 연방 수사 사건이 됐습니다.
수사는 마운틴 뷰에 있었던 수정(Crystal Palace)에서 시작됐습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제 기억도 희미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자료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사건의 중요한 출발점은 2000년 4월이었습니다. 서니베일 경찰국(Sunnyvale Department of Public Safety)에 수정 이라는 한인 호스티스 바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이에 경찰 당국이 자체 조사를 시작했고, 같은 해 6월 FBI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FBI가 비밀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은 훨씬 커졌습니다. 국세청(IRS), 당시 이민국(INS), 연방검찰, 가주 검찰국, 주류통제기관 ABC 등까지 관여한 것으로 법원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수사 범위도 캘리포니아 밖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2002년 7월 22일 관련자들이 체포됐습니다. 당시 언론이 확인한 두 업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정(Crystal Palace Nightclub) — 1183 W. El Camino Real, Sunnyvale
옥녀봉(Ok Yeo Bong) — 606 S. Bernardo Ave., Sunnyvale
2002년 마운틴 뷰 보이스 라는 지역 인론도 이 두 곳을 정확한 주소와 함께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데이빗 리 밀러’라는 백인 경찰관이 등장했습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이 경찰관은 2002년 체포 당시 40세로, 서니베일 경찰국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베테랑 경찰관이었습니다.
범죄현장 수사관이었고 방어술 교관이었으며 SWAT 경력도 있었습니다. 당시 오후 4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근무하면서 술집과 나이트클럽을 순찰하는 업무도 맡았죠.
그 과정에서 한국계 호스티스 바들과 접촉하게 됐다고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보도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영화처럼 흘러갑니다.
연방 수사자료에 따르면 옥녀봉 업주 한 모씨는 당시 잠입수사관에게 자신이 약 1994년께 문제의 ‘David’ 경찰관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관이 업소에 와서 자신을 괴롭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그에게 한국 문화를 설명했고 관계가 달라졌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곧 선물과 여성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2,000달러를 지급했다는 진술도 수사자료에 등장했습니다. 그 대가로 경찰관이 단속정보를 알려주고 업소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줬다는 것이 당시 수사당국의 주장이었습니다. 밀러는 이후 2005년 공권력을 이용한 금품갈취 공모 혐의 두 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경찰이 업소를 단속하기는커녕 단속을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백인 경찰이 한인 룸살롱 업주에게 준 혜택
제가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보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단순한 ‘뇌물’보다 경찰관이 제공한 도움의 내용입니다. 당시 수사자료와 이후 유죄인정 자료를 종합하면 밀러가 제공한 도움에는 예정된 경찰 수색·검사 정보를 알려주는 것, 경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업소 종업원이나 고객이 경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주는 것, 업소가 종업원이 빌려간 돈을 받아내는 것등이 포함됐습니다. 더 기막힌 일도 있었습니다. 업소를 떠난 여성들을 찾는 데 경찰관이 동원됐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밀러 경찰관은 업주들과 하와이와 라스베가스까지 동행해 업소를 떠난 여성들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입니다. 왜 경찰관이 업주들과 동행해 업소를 떠난 여성들을 찾아갔는지...
경찰 부패, 공갈 협박, 돈세탁과 세금 문제 등
2002년 공개된 수사자료에는 밀러가 자신의 경찰관 신분이 여성들에게 어떤 압박으로 작용하는지를 설명한 녹취도 등장합니다. 이 대목을 취재하면서 기자였던 저는 아마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찰은 도대체 누구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성 한 명에게 2만~3만 달러의 빚, 사건을 더 들여다보자 훨씬 어두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수사당국은 한국 여성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거액의 빚을 지고 업소에서 일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정 관계자가 수사 협조자에게 했다는 진술에 따르면 여성 한 명에게 미국 입국과 관련해 2만~3만 달러를 빌려줬습니다.
당시 수사자료에는 성매매 한 차례에 고객이 약 600달러를 지불했지만 여성에게 돌아가는 몫은 약 50달러이고 나머지는 빚을 갚는 데 충당됐다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2007년 연방검찰 자료에서도 옥녀봉 공동운영자 로버트 웡은 한국 여성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업소에서 일하게 하는 데 관여한 사실과 밀러에게 돈과 여행 등을 제공하는 대신 내부 정보와 보호, 채무 회수 도움을 받는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포함해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룸살롱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불법 입국·체류 문제, 성매매, 채무를 통한 통제, 경찰 부패, 돈세탁과 세금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었습니다.
FBI를 감시하던 경찰관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번에 오래된 기록을 다시 조사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데이빗 밀러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니베일 경찰국의 또 다른 경찰관 길버트에 관한 징계사건이 나중에 캘리포니아 항소법원까지 갔습니다.
그 법원 기록에 따르면 2002년 3월 FBI 차량들이 수정 관계자 차량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FBI는 이들이 공항으로 가는 과정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업소 측에서 미행을 눈치챈 정황이 나타났습니다. 며칠 뒤 경찰 컴퓨터를 이용해 FBI 잠복수사 차량 번호판을 조회한 사실까지 조사됐습니다. FBI는 한인 업소를 감시하고 있었고, 업소 주변에서는 FBI 차량을 파악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 경찰 내부 정보망까지 얽혀 있었습니다. 범죄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리지만 법원 판결문에 남아 있는 내용입니다.
결국 밀러는 2005년 공권력을 이용한 금품갈취 공모 두 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5월 7일 San Jose 연방법원에서 징역 1년 1일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판사 이름을 보다가 저는 또 한번 오래된 취재수첩을 떠올리게 됩니다.
James Ware. 바로 그 판사였습니다.
앞서 제가 쓴 노소영·최태원 20만 달러 사건에서도 등장했고, 짐 최의 Intel 반도체 칩 사건에서도 등장했던 San Jose 연방법원의 그 판사였습니다.
이번 한인 룸살롱 사건에서도 다시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사건들을 다시 하나씩 맞춰보니 제가 당시 취재했던 여러 사건이 San Jose 연방법원이라는 같은 무대에서 묘하게 다시 만납니다.
<사진 설명> 한인 룸살롱 업소 뒤를 봐줬던 백인 경찰관 밀러를 조사하고 있는 FBI 수사 내용의 지역 언론 기사.
경찰관, 업주 모두 유죄 판결 징역형
업주들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옥녀봉 공동운영자 로버트 웡은 불법체류자 은닉 공모, 공권력을 이용한 금품갈취 공모, 돈세탁 공모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수정 공동운영자 로저 리 역시 불법체류자 은닉 공모와 금품갈취 공모, 탈세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수정 공동운영자 송 모씨는 2006년 불법체류자 은닉 공모, 금품갈취 공모, 탈세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2007년 연방교도소 2년 6개월과 42만2,000달러 배상을 선고받았습니다.
옥녀봉의 한 모씨도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건의 규모가 선명해집니다. 처음에는 서니베일의 한인 호스티스 바에 대한 제보였습니다.
그것이 경찰 내부 조사로 번졌고, FBI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IRS· INS· 연방검찰 등으로 확대됐으며 결국 경찰관과 업소 관계자들이 연방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옥녀봉, 수정….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다시 찾아 한 장씩 맞춰보니 그 업소들 뒤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저는 새삼 생각합니다. 이민사회도 결국 사람이 사는 하나의 사회였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성공도 생겼지만 욕망도 생겼습니다.
심지어 시민을 보호하고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관까지 그 욕망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그것을 신문 1면에 게재했습니다.
지금 다시 취재수첩을 펼쳐보니 그것은 실리콘밸리 한인사회가 성장하면서 함께 만들어낸 그늘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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