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한인사회 야사 제9화: 이민생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부부간 총격, 일가족의 비극, 당구장 연속 살인

아메리칸 드림 뒤에 가려진 사람들

실리콘밸리는 꿈을 찾아온 사람들의 땅이었죠.

한국에서 건너온 엔지니어들은 세계적인 첨단기업에서 미래를 설계했고, 작은 가게 하나로 시작한 이민자들은 밤낮없이 일하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과 기회를 주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성공과 희망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도 부부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균열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갈등이 총기 폭력과 결합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을 취재하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1998년 산호세의 부부 총격 사건, 2002년 산타클라라의 일가족 사망 사건, 그리고 2005년 엘카미노 한인 당구장에서의 총격 사건이 그것입니다.


 



산호세의 부부 총격 사건


1998년, 산호세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울린 총성

1월8일 밤 데일리시티에 거주하던 엔지니어 제임스 채(·46세)가 별거 중이던 아내 에스더 차이(·41세)의 집을 찾아가 아내와 장인에게 총격을 가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숨졌고, 71세의 장인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집 안에 있던 어린 자녀들과 다른 가족들은 총격을 피했습니다.

부부가 어떤 갈등을 겪고 있었는지, 무엇이 그날 밤의 비극으로 이어졌는지는 당시 보도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 총기 폭력으로 번지는 순간, 그 피해는 당사자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남았습니다.

 

일가족 비극


2002년 4월, 샌타클라라의 한 주택에서 한인 여성과 독일인 남편, 그리고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한인 여성 문태영(Tae Young Schiefer·42) 씨와 남편 울리히 쉬퍼(Ulrich Schiefer·38) 씨는 실리콘밸리에서 생활하던 국제결혼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어린 두 딸이 있었죠. 열두 살 엘사와 네다섯 살의 제시카였습니다. 엘사는 문 씨가 이전 결혼에서 낳은 딸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안정된 미국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좋은 직장을 가진 남편, 산타클라라의 주택, 그리고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이미 별거 중이었죠.

2002년 4월 4일, 며칠째 출근하지 않는 남편을 걱정한 직장 관계자가 집을 찾아갔다가 가족들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문 씨가 남편과 두 딸에게 총격을 가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권총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나돌았지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국제결혼에서 비롯된 문화적 갈등 때문이었는지,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두 어린 딸까지 희생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산타클라라 일가족 사망 사건의 가족들

 

아버지의 눈물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뒤 한국에서 급히 미국으로 건너온 문 씨의 전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문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시신을 확인한 뒤 산타클라라 경찰서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자로서 사건의 경위와 경찰의 수사 내용을 확인해야 했지만, 그 순간 제 눈앞에 펼쳐진 것은 취재수첩에 몇 줄로 기록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몇마디 물어본 내용에서 그의 입에서는 딸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취재했지만, 산타클라라 경찰서 앞에서 보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은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어두운 역사를 떠올릴 때마다 되살아납니다.


 

한 해 마지막을 앞두고 벌어진 연속 총격


2005년 12월 30일, 북가주 한인사회는 또다시 충격적인 총격 사건을 접했습니다.

이번에는 프리몬트의 한인 가정과 산타클라라 엘카미노 리얼의 당구장에서 연속적으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취재한 내용은 산타클라라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던 진영철 씨(48)가 프리몬트에 거주하던 지인 김성배 씨(45)의 집을 찾아가서 그에게 총격을 가해 김 씨가 숨지고 그의 아내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몇 시간 뒤 산타클라라의 카미노 당구장에서도 총성이 울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춘수 씨(37)가 숨지고 김상우 씨(43)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총격을 가한 것으로 지목된 진 씨는 같은 날 밤 로스알토스의 공동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묘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하루 사이 세 명이 숨지고 두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사업상 갈등과 원한 관계 등 여러 가능성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기된 의혹만으로 사건의 정확한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이 한인사회에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총격이 발생한 장소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지역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카미노 리얼은 당시 한인 식당과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당구장은 사람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고 지인들과 어울리던 곳이었습니다.

그처럼 익숙한 장소가 하루아침에 살인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


1998년 산호세 부부 총격 사건, 2002년 산타클라라 일가족 사망 사건, 2005년 엘카미노 당구장 연속 총격 사건은 서로 다른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배경과 관련된 사람들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세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한인 이민자들의 평범한 생활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에서, 평소 지인들이 모이던 당구장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어제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미국 이민생활을 이야기할 때 성공과 기회를 먼저 떠올립니다. 좋은 직장을 얻고,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많은 이민자들의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업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낯선 사회에서 겪는 외로움과 경제적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이 세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민생활의 어려움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사건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겉으로는 안정되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과 이웃에게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총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순간적인 분노와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인사회에도 어려움을 겪는 가족과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보다 사람입니다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성공한 기업인과 엔지니어, 사업가들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역사에는 성공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총격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부모를 잃은 아이들,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신문은 이를 보도하고 경찰은 수사에 나섭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힙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역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뜻하지 않은 비극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살아가야 했던 이웃들도 있었습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