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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한인사회 야사 30년: 프롤로그

 화려한 기술의 성지, 그 그늘에 새겨진 30년의 잔상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요.

애플, 인텔, 구글, 엔비디아. 차고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평범한 엔지니어가 백만장자가 되는 곳. 오늘날 실리콘밸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부가 만들어지는 ‘꿈의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30여 년 동안 기자로 바라본 실리콘밸리에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한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방 몇 개를 들고 한국을 떠나 작은 가게를 열었던 사람들, 서툰 영어로 밤늦게까지 장사했던 사람들, 전자회사 생산현장에서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키웠던 사람들, 그리고 반도체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엔지니어들과 경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번 사람도 있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욕망,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곳에서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사건들








제가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무렵, 한국 대통령의 딸과 재벌가 사위가 미국에서 약 20만 달러를 여러 은행에 나누어 입금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 Applied Materials의 한국 책임자가 서니베일의 호텔방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경찰과 주변 사람들을 취재해 그 사건을 한인신문 1면 기사로 보도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반도체 칩이 ‘금’처럼 취급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Intel 칩을 실은 트럭과 창고가 강도들의 표적이 됐고, 한인 사업가가 장물로 위장한 Intel 칩을 사려다 FBI 함정수사에 걸린 사건도 취재했습니다.


한인사회가 성장하면서 어두운 모습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한인 유흥업소와 경찰관의 유착 사건, 성공가도를 달리던 한인 전자업체들의 몰락과 IRS 수사, 높은 수익을 약속하며 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던 SNC 외환거래 사기사건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 하나로 거액이 오갔던 ‘계’가 무너지면서 친구와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돈으로 산 영주권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 가운데 하나는 한인들의 영주권 문제였습니다.

어느 날 가까이 지내던 변호사 친구에게서 연방 검찰이 수사 중인 심상치 않은 사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돈을 주고 영주권을 받았다는 사건이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의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연방 수사가 확대되면서 이민국 직원에게 전달된 뇌물과 수백 명의 한인 영주권 문제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기자로서 알고 지내던 사람과 취재 대상 사이에 선을 그어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밖에도 한국 여성들이 캐나다와 멕시코 등을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했던 사건, 오랫동안 한인사회에서 성실하게 장사하던 한인 여성 자영업자가 카지노 슬롯머신에 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빌린 뒤 사라졌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나하나가 당시 한인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이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저는 수많은 사람을 취재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었고 실패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감옥에 간 사람도 있었으며,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과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끝난 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뉴스’로 썼습니다.

마감시간에 맞춰 기사를 쓰고 나면 또 다른 사건을 찾아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30여 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제가 썼던 기사 한 줄 한 줄이 실리콘밸리 한인사회의 역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기억만으로 역사를 쓰지는 않겠습니다.

당시 제가 직접 취재하고 들었던 이야기와 경찰· FBI· 연방검찰· 법원 기록을 다시 맞춰보겠습니다. 당시 한인사회에 돌았던 이야기와 훗날 확인된 사실도 가능한 한 구분해서 기록하려 합니다. 이 연재의 목적은 과거의 사건이나 사람을 다시 심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제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사람들, 성공하고 싶었던 사람들, 돈을 벌고 싶었던 사람들, 영주권을 얻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믿으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Apple, Intel, Google, NVIDIA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빌딩들 바로 옆에서 가게를 열고, 공장에서 일하고, 식당을 운영하고, 반도체를 팔고, 교회를 다니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수많은 한인 이민자의 삶 역시 실리콘밸리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이제 그 오래된 취재수첩을 다시 펼쳐, 그 뉴스들을 ‘우리의 역사’’로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 한인사회 야사 30년》

그 첫 번째 취재수첩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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